딥무브먼트의 운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감독 에세이 공간이에요.
2026.04.01 · 읽는 데 약 3분
"저희 결혼식에 감독님을 초대하고 싶어요"
어느 날 상담 채팅에 울린, 한 예비신부의 첫 마디였다.
10년 동안 수 많고 다양한 결혼식 현장에서 영상 감독 위치에 있으면서 우리나라 결혼 문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신부이고 그 가족들인데, 정작 결혼식 당일에는 연출 촬영에 시간을 빼앗겨 가족들과, 축하하러 와준 하객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방식의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분명 취향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연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신랑신부도 많다) 다만 내가 이 글을 써내려가는 이유는, 나와 같은 결로 결혼식의 본질을 바라보는 신랑신부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알아봐주기를, 그리고 그들의 결혼식에 초대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오래 눌러붙은 결혼식 시스템의 문제는 곧 물리적인 문제에도 직면한다. 수많은 신랑신부들이 이 구조의 문제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지만, 신랑신부의 힘만으로는 그 눌러붙은 시스템을 떼어낼 수가 없다. 1시간 간격으로 신속하게 진행되는 결혼식은 그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촬영팀이 단상과 버진로드 할 것 없이 굉장히 바쁘게 돌아다닌다. 가장 좋은 사진을 남기기 위해 촬영팀들은 센터에 자리 잡고, 중요한 장면을 렌즈에 담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좋은 장면을 위해 하객으로 온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마저 가려지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신랑신부가 서로에게 영원의 사랑을 약속하며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은, 하객의 시선을 가리고서라도 촬영팀이 독점하게 되었다.
단상에 올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해온 덕담은, 단상 위에 올랐지만 신랑 신부의 뒷모습만 보일 뿐, 스피커로 전달된 소리만 들릴 뿐이다. 심지어 덕담중에 신랑신부에게 포즈를 요구하며 신랑신부의 온전한 시간 마저 빼앗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하객들은 신랑신부의 뒷모습만 보다가 가는 경우도 있다.
촬영팀이 많아지면 이런 일은 식중에 더 잦아지고 결혼식 본질을 점점 오염시킨다. 서로의 동선에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촬영팀끼리 배려해주는 와중에 하객들의 시선은 배려되지 않는다.
요즘 보여주기식 결혼식이라는 말이 떠돌지만, 말과 다르게 진심으로 축하해주기 위해 많은 하객들이 결혼식으로 발걸음한다. 고비용 시대에 문화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을 준비하게 되더라도, 예비신랑신부들은 진심을 다해 사람들을 초대한다. 진심이 모여 만든 깊이가 있는 자리다.
그 결혼식을 있는 그대로 담기로 했다. 이젠 나도 촬영자를 넘어 한 명의 진심어린 하객의 시선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꼭 누군가의 시선을 가려야만 좋은 장면을 담는게 아니다. 무리하게 버진로드나 단상으로 진입하지 않는다. 나의 본식 영상 구도에는 그런 시선이 담겨 있다. 그 시선 위에, 신랑신부가 결혼식에 담은 색깔을 깊게 우려내서 색감을 만든다.
결혼식은 단순히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랜 세월 끝에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을 축하하는 자리이며, 두 사람 인생에 함께한 가족들을 위한 자리이다. 그리고 두 사람 인생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결이 같으면 서로 끌리는 성질이 있는 건지, 이제는 그 눌러붙은 시스템을 과감하게 떼어버리는 신랑신부들을 자주 만나기 시작했다.
"우리 결혼식에는 포토그래퍼가 없어요! 온전하게 결혼식을 즐기고 싶어요"
"본식 때는 버진로드나 단상 위로 올라오지 않으셔도 돼요. 결혼식 자체를 온전히 느끼고 싶어요"
정말 극소수이겠지만, 이런 본질을 꿰뚫어보는 신랑신부들을—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나의 본식 감독 인생에서—최대한 많이 만나고 싶다. 업체명을 범고래필름에서 딥무브먼트로 바꾼 이유도 그래서다. 나 스스로도 내가 더 깊어졌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나를 믿고, 결혼식을 온전히 즐기고, 눈으로 담고, 대화했던 그들이 진하게 기억 할 결혼식을 — 먼 훗날 그들이 영상으로 다시 꺼내 볼 그 시간 자체가 그들에게 선물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챙겨든다.
먼 훗날 신랑신부가 소파에 앉아 '우리도 이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추억할 그날을 위해.
2026.05.28 · 읽는 데 약 3분
처음 본식영상을 시작했을 때, 나는 주말이면 하루에 두 팀, 많게는 세 팀을 찍었다. 오전 예식을 끝내고 장비를 챙기면서 다음 홀로 달려갔고, 점심도 거른 채 또 다른 신랑신부 앞에 섰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더 많이 찍는 게 더 잘하는 거라고 믿었으니까.
문제는 거창한 데서 오지 않았다. 체력이었다. 영상 감독은 무겁고 많은 장비를 짊어지고 하루 종일 움직인다. 카메라에 짐벌, 여러 대의 캠과 녹음 장비까지 들고 예식 내내 발 빠르게 자리를 옮긴다. 오전 한 팀에 제대로 쏟고 나면, 오후에는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마음은 똑같이 담고 싶은데, 다리가 무겁고 손이 굼떠진다. 그 차이는 고스란히 영상에 남는다.
결국 깨달았다. 한 사람의 결혼식에는 내 하루치 체력을 전부 쏟아야 한다는 것을. 단 한 번뿐인 그 하루를 오전 반, 오후 반으로 나눠 가진 체력으로 담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정했다. 하루에 한 팀만 받기로. 이중 부킹은 하지 않는다. 한 팀의 예식이 잡히면 그날 들어오는 다른 모든 문의는 정중히 거절해야했다. 돈으로 따지면 분명한 손해다. 그런데도 이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사람에게 단 한 번뿐인 하루라면, 나도 같은 마음으로 그 앞에 서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솔직히 찍으라면 하루에 세 팀도 찍을 수는 있다.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내가 그러지 않기로 한 거다.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어서. 나를 믿고 그 하루를 맡겨준 고객에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첫 번째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딥무브먼트는 본식영상만 찍는 1인 감독 프로덕션이다. 사전 답사부터 예식 당일 촬영, 후반 편집까지 전부 내가 직접 한다. 하루에 한 팀만 받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답사 때 본 그 홀의 빛을 그대로 기억한 채 촬영에 들어가고, 현장에서 느낀 공기를 식지 않게 작업실까지 가져온다.
가끔 같은 날 두 팀은 안 되냐는 문의를 받는다. 그때마다 같은 답을 한다. 하루를 반으로 쪼개서 담고 싶지 않다고. 시네마틱 본식영상이든 흔히들 본식DVD라 부르는 그 기록이든, 결국 남는 건 그날 그 자리에 내가 얼마나 온전히 있었느냐다. 나는 그 한 팀에게 집중하는 쪽을 택했다.
2026.05.29 · 읽는 데 약 3분
12년 전, 내가 영상회사 소속 직원일 때 일이다.
그때 나는 내 이름을 걸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해서 하는 일이었다. 시키는 대로 찍고, 정해진 만큼 받고, 그렇게 주말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촬영 현장에서 한 스냅 실장님을 만났다.
그분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이 웨딩 촬영업의 프로페셔널함에 압도당했다. 현장에서의 목소리, 사람을 이끄는 태도가 꼭 양떼를 모는 목자 같았다. 예식이 끝나면 혼주분들이 먼저 다가와 고맙다며 인사를 건네고 가실 정도였다. 단순히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자리 전체를 편안하게 끌어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정신없는 결혼식에서 넘치는 여유로움과 아우라를 뿜을 수 있을까. 너무 궁금해서 촬영이 끝나고 커피를 한잔하면서 여쭤봤다. 그런 여유의 비결이 뭐냐고.
그때 그분이 커피를 한 모금 짧게 들이키시더니, 되게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보고 활짝 웃는 연습을 해요. 말끔한 수트를 입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이 말은 어느 만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세계 최강이 된 주인공에게 그 비결을 묻자, 매일 팔굽혀펴기와 달리기를 거르지 않았을 뿐이라고 답하던 장면.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허무한 그 대답이, 실장님의 말과 겹쳐 보였다. 별것 아닌 말 같았는데, 집에 가는 길 내내 그 말이 맴돌았다.
바로 그날, 몸에 딱 맞는 수트는 아니더라도 움직이기 편한 정장 한 벌을 샀다. 다음 날 촬영 때 그걸 입고 나갔다.
그날 아침,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난생처음 해봤다. 어찌나 어색하던지,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두세 번 미소를 짓다 말았다. 그런데 그 어색한 웃음에도, 이미 나는 그날부터 달라지고 있었다.
옷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순서가 반대다. 마음가짐이 달라지니까 입는 옷이 달라졌고, 표정이 달라졌고, 현장에서의 내 움직임이 달라졌다. 수트는 그 마음가짐을 몸에 새기는 방아쇠였을 뿐이다. 프로페셔널함은 타고나는 아우라가 아니라,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만드는 거였다.
해야만 해서 하던 일이, 그날을 기점으로 조금씩 내 일이 되어갔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잘하고 싶어서 거울 앞에 서기 시작했으니까. 무언가를 바꾸고 싶으면, 누가 바꿔주길 기다릴 게 아니라 나부터 바꾸면 된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을 정장 한 벌과 거울 앞 웃음 연습이 가르쳐줬다.
얼마 전 SNS에서 이런 글을 봤다.
"국내 탑 스냅 작가가 있다고 치자. 그 작가는 얼굴에 온갖 피어싱을 하고 전신 타투에, 의상도 굉장히 펑키하게 입어. 그게 그 작가의 시그니처고, 그럼에도 그 작가에게 예약을 못 해서 안달이야. 넌 그 작가에게 결혼식은 당연히 격식 차려야 되니 갖춰 입지 않았다고 클레임 거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특수한 직업들은 사회적 통념이라는 게 적용되지 않는 것도 상당히 많다고 생각해. 그래서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고, 필요한 게 있으면 미리 확인을 하는 건 고객의 책임이라는 거야."
일리가 없진 않다.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 사람들이 많은 걸 눈감아주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작가가 아니다. 신랑신부다. 그리고 우리는 작가이기 이전에 업자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건 특정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평균적인 가치관과 양식을 말한다. 내 시그니처를 그 통념보다 앞에 두는 순간, 나는 그 자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잊은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되물을지 모른다. 고객이 이미 그 작가의 모습까지 다 보고 계약한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게 내 이야기의 핵심이다. 고객이 그 모습까지 보고 받아들여 선택했다면, 그건 고객이 먼저 그러기로 마음 먹은 경우다. 문제가 되는 건 정반대의 상황이다. 고객은 미처 몰랐거나 원하지 않았는데, 작가가 "난 원래 이래"라며 자기 방식을 밀어붙이는 경우. 결국 기준은 하나다. 누가 그것을 선택했는가.
그래서 "필요하면 미리 확인하는 게 고객의 책임"이라는 말에는 가장 동의하기 어렵다. 순서가 반대다. 고객은 결혼식이 대개 처음이고, 우리는 수백 번째다.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게 고객이다. 그걸 먼저 헤아려 챙기는 게 업자의 책임이지, 안 물어봤다고 고객 탓을 할 일이 아니다.
물론 예외는 있다. 고객이 먼저 "작가님, 저희 결혼식엔 평소대로 입고 오셔도 돼요. 그 모습이 좋거든요" 하고 말해준다면, 그땐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결정권이 고객에게 있을 때는 괜찮다. 차이는 거기에 있다. 내가 정하느냐, 고객이 정하느냐.
나는 늘 움직이기 편하고 통기성 좋은 기능성 정장을 입는다. 야외 결혼식용 전투복 같은 정장이 따로 있고, 실내 촬영용 정장이 따로 있다. 너무 더운 날엔 검정색 한복 같은 말끔한 셔츠를 입고 가기도 한다. 격식을 위한 격식은 아니다. 무더운 한 여름에까지 정장을 차려 입고 올 필요는 없다. 무조건 사회적 통념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챙기는 건 통념이 아니라, 오늘 함께할 신랑신부의 결혼식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촬영 가는 날이면 가끔 그 날 작가님의 미소가 떠오른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느냐가, 내가 담는 영상의 첫 장면을 이미 정하고 있다고 믿는다.
Or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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